"유난 떠는 거 아니냐고요?" 반려인 '펫로스 증후군' 주의보 [슬기로운 반려생활 ④]

입력 2024-03-07 07:00   수정 2024-03-08 09:57


"반려견을 떠나보낸 슬픔이 얼마나 큰지 몰랐어요. 반려견이 떠나면 되게 아프기는 하겠지만 저 정도일까 싶었는데, 진짜 그렇게 힘들지는 몰랐죠. 직접 겪어보니 정말 힘들었어요. 그 후유증이 3년 정도 갔습니다."

배우 유해진은 앞서 세상을 떠난 반려견 겨울이를 떠나보낸 후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을 앓았다고 고백했다. 유해진의 반려견 겨울이는 tvN '삼시세끼'에 그와 함께 출연해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사랑받았다. 유해진이 겨울이가 보이지 않을 때면 "안돼, 겨울이"를 외치는 모습은 프로그램의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유해진 외에도 가수 이효리, 배우 유연석과 윤균상, 개그우먼 신봉선 등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낸 후 우울감과 슬픔을 드러내며 후유증을 고백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가족을 잃었다, 모두가 슬프다
동물마다 다르지만, 반려동물 대부분은 반려인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보다 약하고, 빠른 시간을 살아가는 반려동물을 먼저 보낸 후 슬픔에 상실감과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8월 정운선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 137명 중 32~55%가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했다.

펫로스 증후군은 과거엔 "유난"이라며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펫로스 증후군으로 우울증이 심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성이 대두되는 분위기다.

20년 가까이 모녀 반려견 미미와 키키를 키우다 두 마리 모두 먼저 보낸 김미영(36) 씨는 "딸인 키키가 치매에 걸려 화장실도 못 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면서 "하루하루 약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헤어질 준비를 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이후 산책하는 강아지들만 봐도 눈물이 났다"고 우울증 경험을 털어놓았다.

심각한 우울감이 장시간 지속된다는 점도 펫로스 증후군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애니멀피플이 공공의창·한국엠바밍·웰다잉문화운동과 함께 진행한 '한국 반려동물 장례 인식조사'(여론조사 기관 조원씨앤아이)에 따르면,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 응답자 267명이 복합적인 슬픔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2년(732.2일)이었다. 이런 기간을 줄이기 위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반려동물 문화가 선진적으로 정착된 다른 나라에서는 펫로스 증후군 치료도 대중적이다.

미국수의사협회는 펫로스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 반려동물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기, 슬픈 감정을 충분히 느끼기, 반려동물과의 추억 떠올리기, 반려동물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되새기기, 다른 사람과 감정 공유하기 등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반려동물의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적 부정 단계를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펫로스 증후군을 겪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선택으로 다른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을 꼽으며 "슬픔이 완전히 치유되기 전, 새 생명과 함께하면 이전의 반려동물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며 "세상에 같은 동물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복제동물도 마찬가지다. 슬픔을 대체하기 위해 복제동물을 의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 마리의 복제동물 탄생을 위해선 난자 제공과 대리 출산을 위해 다른 동물들의 희생이 동반된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탄생한 복제동물은 쌍둥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완벽하게 같을 수 없다는 게 현재까지 연구 결과다.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더 나아가야"
펫로스 증후군 상담을 전문으로 해온 심리상담센터 안녕 조지훈 원장은 "처음 이 분야로 일을 시작한 2018년에 비해 상담 건수가 최대 5배 정도 늘은 거 같다"며 "처음엔 상담을 받아야하는 일인지, 인식도 부족했는데 많이 나아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물을 복용한다고 위로가 되진 않는다는 점에서 펫로스 증후군은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슬픔에서 나아가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겨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실제로 갑작스러운 사고로 반려동물을 잃고, 충격과 상실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할만큼 심한 우울감을 호소했던 분들도 계셨는데 그런 분들도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려동물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잘 키워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이어지고 있다. 펫로스 증후군의 근본은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이라는 것.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비롯해 반려동물 인식개선을 위해 활동 중인 설채현 수의사도 자신의 첫 반려견 슈나를 보낸 후 느낀 후회와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반려동물 정신과'라고 할 수 있는 행동 치료에 집중하는 것도 가족과 같은 동물들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맥락이라며 "후회없이 함께 행복하고,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후 마음껏 슬퍼하라"고 조언했다.

설 수의사는 "반려견 슈나를 보내면서 '잘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느낀 거 같다"며 "마지막 순간 힘들고 후회된 건 잘 키우지 못했다는 마음인 것 같더라. '반려'가 아닌 '애완' 동물로 키워서, 저 혼자만 좋았지 이 친구는 좋았는지 생각하지 못한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평생 키우는 수가 2.5에서 3마리 정도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마리가 넘지 않아 그 수가 훨씬 적다"며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키우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져서 그런 거 같다"고 덧붙였다.

또 "동물병원을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고,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반려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료들도 많이 본다"며 "보호자들 중 병든 아이를 뒷바라지하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 감정은 펫로스 증후군과 완전히 다르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반려동물 때문에 슬프다고 하면 '유난'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주변에서 동감해주고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며 "선진국은 펫로스 모임도 있는데, 함께 서로의 슬픔을 이해해주면서 극복을 돕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한경닷컴은 심층기획 '슬기로운 반려생활'을 총 7회에 걸쳐 매일 아침 7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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